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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자작동 마을회관은 설명절 선물준비에 여념이 없다.

발행일 : 2023-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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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동 마을회관은 설명절선물 준비에 여념이 없다.

마을의 평화가 스며들다

자작동 마을은 얼마 전부터인가 평화로움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어떤 게 원인이랄 것도 없이 우리 마을은 이런저런 일들로 서로의 신뢰가 바닥을 친적이 있다. 각자 잘해보려는 생각이 시작이었지만 양 팀으로 갈라선 기싸움이 팽배했었다. 오해와 반목의 시간이 십여 년을 훌떡 넘고..
산촌의 조용했던 마을은 외부의 시설이 유치되면서 전쟁 같은 시간을 보냈다. 이젠 평화롭다

마을 회장님이 선물앞에서 기념샷

다툼도 시간이 흐르면 멈춘다

모두 시절인연이 도래해야 안정기가 오는 듯싶다.
십여 년 전에 시작된 동네의 다툼에 감히 내가 근접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상황들이 있었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다툼은 운영위원팀이 두어 차례 교체되면서 다시 반목으로 편 가르기가 되고.. 내 할 일이 많아 관심조차 없었는데 도저히 안 되겠는지 토호세력들이 다시 뭉쳤다. 마을회관이 점거당한 듯 토호 세력들이 우리 예빛마을에서 수차례 회의를 진행하면서 마을의 전체 스토리를 이해하게 됐다. 혐오시설과 마을주민들과의 협상테이블에서 얻어진 보상금 명분의 수익금을 두고 서로 지키려고 안간힘을 썼다. 돈을 받아서 마을을 팔아먹었다는 둥, 한쪽에선 어차피 없어지지 않을 거 돈을 벌어 왔다는 둥, 여러 차례 이야기를 듣다 보니 마을에 쌓여있는 돈이 없어져야만이 이 투쟁이 멈출 듯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좀 더 젊고 문서작성 경험이 있던 내가 또래의 마을주민들과 본격적으로 해결하기로 작심을 하고 정관수정에 보상금 배분문제를 놓고 우편물 투표를 시작했다. 마침 코로나로 모임이 불가했기에 일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일사천리로 진행을 하면서 12명의 운영위원들의 회의가 이십여 회 이상을 치르면서 일단락시키고 회의 의결내용을 실천했다. 토호 주민들의 적절한 양보 새로 이사 온 주민들께 배려하는 형식으로 마을주민들에게 보상금 배분을 하고.. 여유돈으로 육십 명 가까이 제주 여행이박삼일을 마치고 2022년도를 잘 마무리했다. 동네에서 마을총회는 코로나 때문에 2년간 멈췄다. 코로나 이전에는 총회시간이 패싸움처럼 진행되 왔었는데 오래간만에 회의다운 회의가 엄숙하게 진행되고 마을은 평화로움이 시작되었다. 

오래된 오해만큼 풀어져야 할 시간도 필요하다.

표면은 평화로웠지만 자작동 주민들 중 더러 몇몇 사람은 각자의 자존심을 놓지 못하고 있다. 먼저 다가가서도 잘 풀지 못하는 사람, 오래전부터 묵어있던 감정의 골이 깊은 사람, 사소한 감정으로 자존심이 앞서는 사람, 개인적으로 만났을 때 별 문제를 모르겠는데 오래 묵은 개성들의 오해가 워낙 견고 해서 팀이 갈라져 있는 상태이고 그저 겉모습만 외면하지 않고 맘속엔 금이 가있는 사람, 오랜 세월 동안 묵혀둔 감정이 녹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듯싶다. "우리 이제 풀어 버립시다" 해서 풀어지는 문제도 아니겠지만.. 결국 마음 한번 버리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쉽지 않은 모양새다.

작년부터 시작해서 두 번째이다.

추석명절에는 떡을 돌리고 소고기 양지살을 나눴다. 금년명절에는 노인회에서는 떡가래를 마을회에서는 양지살을 나눴다. 마을회장님이 선물 앞에서 기념샷을 하시고 마을회관 안에서는 가래떡을 배분하고 있다. 따뜻한 풍경만큼 따뜻한 마음들 이어갔으면 하는 간절함이 앞선다. 이런 세월들을 지내다 보면 좀 나아지겠지! 목돈을 배분하고 제주여행 이박삼일을 다녀오고 명절 나눔을 하면서 묵혀있던 목돈은 다이어트가 되어가고 있었다.  사람문제 아니면 돈문제 밖에 없는 세상사가 해결되기까지는 쉽지 않은 과정들이 있다. 

동네 가가호호 돌리려 준비된 소고기 양지살
노인회에서 가래떡 선물을 나누고 휴식중

벽두부터 젊은이가 죽었다.

엊그제 아침에는 우리 마을 통장님께 전화가 왔다. 나이 쉰두 살 된 우리 마을의 홀로 사는 남자가 죽어있었다 했다. 수돗물이 얼었다 해서  그 집을 가야 하는 일이 있어 들렀는데 죽어 있었다고.. 평소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이라 했다. 취해있는 모습을 본 게 한 번이고 얼굴도 기억도 안나는 사람이라면서 이사 온 지도 얼마 되지 않고 시골집을 이천만 원에 사서 살던 사람이었는데 그런 일이 생겼다고 했다.  112 부르고 경찰 불러 수습했는데 가족이라곤 소통 없는 형뿐이고 전화기에는 누구랑 소통한 적이 없다고 한다. 가엾고 안타까운 일이다. 이 나이쯤 되고 보니 사람의 죽음에 관한 감정이 참으로 건조해진다. 왜 그렇게 홀로 살다 쓸쓸히 죽어가야 했을까?  이런 죽음 들을 직간접적으로 봐왔을 법한 사람들이 나이 들면서 대부분 겪어봤을 법한데도 그놈의 자아가 그렇게 중요한 건가? 명절연휴를 보내면서 내가 무얼 달리 생각해야 할지 반성 좀 해봐야겠다. 잘 알고 있지만 습관 때문에 바꿔지지 않는 좋지 않은 습관을 바꿔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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