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재 발로 함부로 차지말라는 안도현 시인의 계절이다
나 어릴 적 시골엔 연탄 때는 집은 형편이 좋던 시절인데 이젠 그 정반대가 되어 있다. 겨울철엔 시간도 많고 하니 연탄을 연일 때는데 방은 늘 따뜻하게 데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겨울철에 연탄을 땐 지 벌써 이십여 년째 되어가니 연탄 때는 일도 전문가가 되어있다. 도시처럼 분주한 환경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산골의 겨울은 어느 집이든 거의가 휴식이다. 겨울철 3개월 정도의 휴식기를 갖고 사는 산골생활이 젖어든 지 이십여 년 차가 돼보니 서울 살던 습관이 완전히 벗어나 있다. 다람쥐처럼 쳇바퀴를 열심히 굴리고 살고 있던 일상을 돌이켜 본다. 직장을 다닐 때는 출근하랴 정신없고 퇴근 후에는 훗날을 대비한 업그레이드를 시키느라 정신없이 보낸 젊은 시절이다. 또한 자영업으로 화실을 운영했는데 한복에 그림을 그리던 일이었다. 직원들 여섯 명을 함께 하던 그 일이 그 시절엔 꽤 잘 나가던 일이어서 제법 괜찮은 형편이었다.
봄철에 도안 디자인이 성공적이면 그 디자인으로 밤을 새워 작업을 하곤 했는데 그 대가로 돈을 벌어 해외여행도 제법 했고 그 대가로 몸이 상해 허구한 날 허리를 고치러 교정받으러 다녀야 했다. 일이 많을 땐 16시간을 고정 자세로 그림을 그려야 했다. 일 욕심 많아 거래처 40여 군데를 확보했는데 날마다 바쁘게 움직이느라 오토바이를 타야 했다. 라때는 말이야 의 이야기가 된다.
결국은 그 일도 IMF를 맞이하며 그만두는 상황에 이르렀다. 작업장의 긴 작업 경험 때문인지 한동안 그 작업장에서 일하던 꿈을 꾸곤 했다. 그러다가 중국으로 들어가 버렸다. 제조업도 하고 에이전트 하느라 중국의 남쪽 나드리도 잦았다. 그렇게 6년 반을 중국 살이 하다가 한국의 제천에 인터넷 검색으로 지금의 이 자리에 들어와 있다. 그 시간이 장장 19년이 되면서 이곳의 주민이 되어 산골살이를 즐기고 있다. 도시에선 분명 나이 든 사람이지만 시골에선 젊은이에 속해 마을회의 총무와 노인회의 총무 겸직을 하고 있다. 시골살이는 분명 매력이 있다. 첨엔 배타적이었던 이웃이 지금은 서로 돕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지금은 돌아가신 이웃의 아주머니 댁에 가까이 잘 지냈는데 우리 학교터로 자꾸만 밭을 일구고 있어 지적도를 떼어 보여 드리며 아주머니 댁 밭의 경계가 어디쯤이냐 질문하니 그다음부터 서울서 굴러먹다 온 여자라고 동네에 소문을 내 버렸다.
황당한 일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는데 도시와 시골은 분명 다른 점이 있다. 그 아주머니는 우리 집에 노크도 없이 들어와 서랍을 여기저기 열어보곤 했는데.. 유달리 타 지역을 벗어나 본적이 없이 시골살이만 했던 아주머니라서 그냥 호기심에 그랬던 건데 난 그저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그래도 시골의 인심이 풍요로운 건 내가 어떻게 맘을 쓰고 적응하느냐에 달려있었고 그 일이 내겐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총무 때문에 고맙다고들 하신다. 총무가 맡은 일이 가끔씩 잔심부름과 돈 씀씀이를 관리하는 건데 시골에서 난 젊은이에 속하므로 총무를 외면할 수가 없고 생각해보면 그 덕에 넉넉한 인심을 누릴 수 있는 고마운 상황이기도 하다. 총무를 맡지 않으면 동네에서 할 수 있는 적절한 사람이 없는 관계로 동네분들과 잘 지낼 기회를 놓칠 것 같기도 하다. 어쩌다가 동네의 중심에서 마을의 분쟁 조정자가 되기도 하고 막내 심부름꾼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19년째 시골살이를 하면서 추운 계절이 돌아오면 연탄을 피우고 눈이 오면 연탄이 쌓여있는 풍경을 사진 찍어 올리기도 한다. 늦은 가을쯤이면 연탄을 피우고 연탄 피울 시간의 여유를 갖기도 한다. 도시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겨울이 오면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사람이 되어 동면하듯 겨울을 보낸다. 충전의 시간이다. 꾸준히 연탄이나 피우면서...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 도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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